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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 : 실존적 질문을 던지는 가장 이상한 방법

혜등 2023. 8. 2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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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를 거치며 누구나 한번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다다르게 된다. 그 시절 각자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 모르겠지만 어른이 된 지금 그 질문은 아주 한켠에 고이 모셔져 있는 흑역사로 보존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흑역사 덩어리를 아주 크게 확대해서 보여준다. 거침없는 상상력으로.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존 말코비치 되기'는 1999년에 개봉한 영화로 너무나도 파격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가난한 인형조종사 크레이그 슈와츠와 그의 아내, 슈와츠의 동업자이자 이야기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맥신, 그리고 수동적인 인물이라고 해야할지 능동적인 인물이라고 해야할지 모를 존 말코비치까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그 수가 많지 않지만 그 관계는 도식으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 복잡하다.

 

일반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은 서로 하나의 직선으로 관계가 생성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직선을 무작위로 그으며 그 직선이 내가 나에게로 연결되기도 하고, 갑자기 원숭이와 연결되기도 하며,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가 교차하기도 한다. 그런 혼란을 주며 감독이 던지는 질문 보다는 이 이상한 상황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감각이 영화를 보고나면 가득 남게 되는데, 이 영화가 주고 싶은 것이 어떤 '답'이 아니라 '혼란'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왜인지 다크나이트의 조커가 떠오르는 면이 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지만 자신의 자아 실현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인형조종사인 주인공에게 우리는 연민을 가질 것 같지만 이 영화를 보고나면 그를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보기가 더 쉽다. 그리고 사람들은 존 말코비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얼마든지 돈을 쓰고, 그 경험 속에서 희열을 느낀다.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경험에서 왜 희열을 느낄까? 

우리는 일반적으로 나 자신보다 높은 천장 아래에 살고 있다. 그래서 이 높이에 대해 감사함을 느낄일은 잘 없고, 대신 익숙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속에서 주인공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직장에서 이상하게 낮은 천장 아래에서 일하게 된다. 그 공간이 주는 불편함과 어색함은 너무도 선명해보이지만 그 곳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일을 하고 있다. 주어진 높이에 순응한 사람들에게 그 천장은 이상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나 자신 속에서 살고 있다. 그 모습에 대해 좋아하고 싫어함을 떠나서 어느 순간 익숙해지게 된다. 그리고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단 한번도 그 틀을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존 말코비치가 되는 경험은? 너무도 낮은 천장에서 평생을 살지 않아도 된다는 하나의 출구를 찾은 기분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런 혼란을 찾은 사람들은 이제 해방감을 느끼고 환호하게 되는 것이다. 돈도 명예도 필요 없이 혼란을 추구했던 조커의 이상처럼.

존 말코비치라는 배우를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되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찍는 선택을 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놀라웠다. 왜냐면 이런 영화를 찍고나면 그 이후가 너무 두려울 것 같기 떄문이다. 이 영화에 몰입하면 어느정도 정체성에 혼란이 오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런데...

존 말코비치에 대해 찾아봤더니 100years라는 영화를 찍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무려 100년뒤에 개봉되기로 한 영화.

이 영화의 필름은 Louis XIII Cognac의 금고에 보관되어 있으며, 금고는 개봉일에 자동으로 열리도록  되어 있다. 2115년 11월 18일에 Louis XIII Cognac이 엄선한 VIP 고객 1000명을 대상으로 개봉될 것이라고 하며, 그 대상이 사망 시 후손이 참가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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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걱정은 안해도 되는 배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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