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디자이너의 독학
[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더 스파이더버스 _ 가로질러가야만 넘어설 수 있는 것들에 대하여 본문

이 영화의 첫장면은 그웬의 드럼 연주, 밴드 음악과 함께 시작된다.
격렬하고 가슴뛰게 하는 드럼 비트는 이 영화에 대한 기대를 한껏 끌어 올리지만 어느 순간 이 연주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곤 약간의 말다툼, 밴드를 나서는 그웬.

전작인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에선 마일즈의 힙합 음악이 영화 전체를 감쌌던 것을 떠올리면 무언가 이 영화는 다른 것을 이야기 하고 싶다고 느껴진다. 전작에서 주인공 마일즈는 어설픈 실력으로 힙합 음악을 흥얼거리지만 영화 내내 그가 말하는 ‘의도적인거야’라는 메시지 덕분에 그 실력에 대해 가타부타 이야기는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첫장면부터 엄청난 드럼 실력을 보여주는 그웬에게 밴드 팀원들은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어본다. 왜 그러냐고. 하지만 그웬은 속마음을 터놓지 않고, 혼돈속의 세상속으로 돌아온다. 스파이더맨 생활이라는 너무도 큰 짐을 지고 자기 안으로 파고들기만 한다. 유일한 내 편이 되어줄 아버지는 나의 또다른 자아를 추격하고 있고, 나의 또다른 자아를 이해해줄 친구는 이 세상에 없다. 분명 어딘가에는 있는데.

영화 속에서 마일즈는 계속해서 더 큰 세상으로 나가려고 한다. 브루클린을 벗어나서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이 있는 대학교에 가려고 한다거나, 어디로 연결될지 모를 그웬이 가는곳으로 따라가고 싶어 한다거나, 모든 스파이더맨들에게 금지 되어 있는 공식 설정을 무너뜨린 세상으로 가고싶어 한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부모님이 말리고, 가장 그리워하던 그웬이 말리며, 선망하던 모든 스파이더맨이 말린다. 그걸 누가 정했냐 묻는 마일즈. 마일즈는 그간 배운 것들로 그것을 가로질러(across) 간다. 유머와 경험담으로 상담사에게 자신만의 입학 스토리를 전하고, 투명 스파이더맨이 되어 몰래 슬쩍 그웬을 따라가고, 피터B파커에게 배운 그 무언가(?)로 모든 스파이더맨들을 따돌린다. 그리고 그곳에 먼저 가본적 있는 스파이더맨, 미겔 오하라는 특히 격렬하게 반대한다.

미겔 오하라는 그웬에게 있어서는 구세주와도 같은 인물이다. 나와 다른 세계에 있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고, 내가 있던 세상으로부터 떠날 수 있게 해준 사람. 시계도, 새롭게 만나게되는 인연도, 다 너무 고맙고 고맙고 또 고맙다. 그래서 절대적이다. 미겔 오하라가 만든 세상 안에서 그웬은 모든것을 받아들인다. 미겔이 만든 이상하게 느린 엘리베이터의 템포에도 별말이 없다. 그웬은 원래 혼자만의 템포로 치고나가는 드럼 연주자였지만 미겔 오하라의 밴드에 들어가면서 받아들인 수많은 것들 중 하나다. 영화 후반부에도 나오지만 그웬은 애초에 마일즈 모랄레스의 존재 비화에 대해서도 다 알고 있었고, 그를 만나선 안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받아들였었다. 나를 다른 세계로 이끌어주는 사람의 밴드 속에선 그 어떤것에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한채 그 밴드 밖으로 쫓겨날까 전전긍긍한 것이다.

결국 미겔 오하라의 기준을 충족 시키지 못해 그의 밴드, 스파이더 크루(?)에서 쫓겨난 그웬.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원래 나의 세상으로 돌아와 마주하고싶지 않았던 현실(아빠)과 마주치게 된다. 하지만 어느새 내 편이 되어준 아빠의 모습. 아빠의 감정 변화과정은 영화상에서 크게 묘사되지 않는다. 하지만 가장 큰 사랑이 가장 어려운 일을 해내는걸 많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모습이 그웬에게 힌트를 준다. 호비가 준 시계도 힌트가 된다. 문득 둘러보니 나를 둘러썬 모든 것들이 힌트였고, 그게 내 밴드였다. 더 이상 밴드에서 나올 필요가 없다고. 내가 원하는 밴드를 찾을 수 없다면, 내가 밴드를 만들면 된다고.

그러고보면 이 영화에서 가장 큰 빌런은 미겔 오하라다. 여기서 미겔 오하라는 그웬과 마일즈 모두에게 대립되는 인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날 밴드에서 내쫓은 사람, 내가 더 큰 세상으로 가지 못하게 한 사람. 스팟이 큰 비중으로 나오는 것 같지만 스팟은 마일즈 모랄레스의 숙적이다. 숙적은 어떠한 의미에선 ‘당연한 존재’다. 점점 성장한 스팟은 괴물이 되어가고 이겨낼 수 없는 존재처럼 그려지지만 ‘당연히’ 때가 되면 잘 마주하리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미겔 오하라의 존재를 먼저 넘어서야 한다. 그에 대한 새로운 해석, 정의가 내려지지 않고는 어려울 것이다. 그 너머에 가로질러 가야만 답이 있다. 그웬과 마일즈에겐 미겔 오하라는 빌런 아닌 빌런, 숙적 아닌 숙적인 것이다.

더 넓은 세상으로 가고 싶었지만 모두의 걱정보다도 더 나쁜 길(지구 42)로 접어들게 된 마일즈. 스파이더맨이 나온지 벌써 60년을 훌쩍 넘은 지금, 스파이더맨 코믹스에선 너무도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피터 파커의 죽음과 빌런이었던 닥터 옥타비우스가 스파이더맨이 되는 이야기까지 나올 지경이니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다 받아들여야만 할 것 같다. 또다른 지구에선 악당이 된 자신을 마주한 마일즈. 이제 본인이 원하는 밴드를 완성한 그웬의 이야기는 어느정도 모양을 갖췄지만, 마일즈 모랄레스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뒤따른다는 말 대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마일즈에게 그웬은 더 큰 세상에겐 더 큰 밴드를 필요로 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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