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디자이너의 독학
[왓챠] 12명의 성난 사람들 : 차가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작은 선행 본문

왓챠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찾고 있던 와중, 나이브스 아웃을 재밌게 본 나에게 알고리즘이 추천한 영화.
1950년대 영화이기에 흑백 영화이며 추리, 범죄 영화라는 정보만 가지고 봤지만 별 5개를 주어야만 했던 영화.
이 영화가 전달하는 모든 것들은 간단하다.
등장인물은 제목에서 말하는 12명의 성난 사람들(배심원)이 거의 전부이며 그 외의 판사나 소년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 전체에 등장하는 공간도 배심원들이 토론하는 공간이 거의 전부이며, 대부분의 장면에서 컷 전환을 최소한으로 한 것이 느껴진다.
거기다 어떻게 보면 1시간 반 동안의 이야기 동안 이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도 간단하다. 섣부른 확신은 위험하다는 것. 우리가 자선 활동을 하진 못하더라도
누군가에 대해 판단할 때, 너무 쉽게 결론에 도달하지 말고 잠깐만이라도 차분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어느 법정에 아버지를 칼로 찔러 살해한 소년의 혐의를 두고 12인의 배심원들이 만장일치 합의를 통해 소년의 유무죄 여부를 가려 줄 것을 요구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더운 날, 선풍기 조차 고장난 답답한 공간안에서 모두가 어서 빨리 결론을 내리고 밖으로 나가고 싶은 상황. 거기다 배심원들이 결정해야할 사안은 너무나도 명백해 보이고 소년에게 유리한 증거나 상황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시작한 모의 투표에서 만장일치를 기대하지만 12명의 배심원 중 한명은 섣불리 결정하지 않고 무죄의 의견을 들어봐야한다고 이야기한다. 적어도 무죄일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시작된 1:11의토론은 2:10, 3:9, 4:8, 6:6, 8:4, 9:3. 11:1, 12:0까지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게 이 영화의 내용이다.

이 영화는 처음 토론이 시작될 때 일견 불편한 마음이 든다. 이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화가 나있는지 이해할 수 없고 그 등장인물들에 대해 반감이 들기도 했다. 대체 뭐가 그리 확신에 차있는지. 소년이 유죄라는 마음이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배심원 8(헨리 폰다)은 쉽게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그러면서 차근차근 각자가 가지고 있는 편견에 대해 다시 상기 시키고, 각자가 해낼 수 있는 작은 부분들을 일깨워준다. 노인이기에 노인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었던 배심원 9, 역설적으로 빈민가에서 자라 모두의 편견을 깰 수 있었던 배심원 5, 노동자로써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었던 배심원 6, 그리고 꼼꼼하게 이야기를 정리했던 배심원 11. 모두가 처음의 유죄의견에서 무죄로 만장일치에 도달하기 까지 하나하나 역할을 해낸 사람들이었다. 배심원4의 마지막 눈물과 절규가 가장 극적인 변화로 읽힐 수 도 있겠지만 나는 의견이 뒤집히는 과정에서 나오는 각자의 역할이 더 극적인 변화로 느껴졌다.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배심원 8은 지속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무죄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고. 사실 유죄일 수 도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쉽게 유죄라고 100%말할 순 없다고.
이 영화는 만장일치로 무죄라는 결론에 도달하지만 결국 실체적 사실에 대한 추리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 소년이 아버지를 살해했는지, 범행 방법은 무엇인지, 마지막엔 그 모든 누명이 벗겨졌는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어렵사리 만장일치에 도달한 배심원들이 법정을 나오면서 끝이난다. 오늘을 기억하겠다는 듯이, 그제서야 서로의 이름을 확인하며. 화났을 때 알 수 없었던 차가운 마음의 소중함으로.
소위 말하는 ‘요즘 영화’가 아닌 것들이 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담겨 있는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 추천한다.
'보고 듣고 느낀것들 > 영화.드라마.OTT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 : 가부장제 역지사지 멀티버스 체험기 (0) | 2023.08.20 |
---|---|
[영화] 바비 : 켄 혼자 이해 못하는 완벽한 핑크 코미디 (0) | 2023.08.04 |
[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더 스파이더버스 _ 가로질러가야만 넘어설 수 있는 것들에 대하여 (1) | 2023.07.12 |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 20년 동안 쌓인 2시간 (0) | 2023.01.16 |
[영화] 엔칸토 : 콜롬비아에도 마법의 세계에도 존재하는 k-장녀 (1) | 2023.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