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디자이너의 독학
[에세이] H마트에서 울다 : 어머니를 잃고 난 후 다시보는 음식에 대하여 본문
반응형
이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의 주된 정서는 슬픔이었다. 그리고 작가의 문화적 배경, H마트가 암시하는 이국적인 생활상이 바탕이 되는 책.
1. 지금 시점에서 내가 받고 있는 어머니의 사랑의 형태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사랑이라는 걸 관심으로 표현하고, 관심이 다시 참견이 되고, 참견이 간섭이 되면 그 땐 사랑이 사랑으로 느껴지지 않게 된다. 하지만 그 시작이 사랑이었다는 걸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이미 사랑을 잃고 난 후에 그걸 되찾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마음먹어도 방법이 없다. 이 책을 읽으면 지금의 사랑의 형태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끝없는 잔소리가 지겨울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제발 편하게 좀 먹자고 곧잘 짜증을 부렸다.
하지만 대개는 그 잔소리가 한국 엄마들이 하는
최고의 애정 표현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고,
그 사랑을 소중히 여겼다. 그걸 되찾을 수만 있다면
당장 무슨 일이라도 다 하련만……
p.29 / 463
2. 한국에서 지내며 너무나 당연하게 느끼고 있는 ‘음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는 엄마가 해주시는 음식들을 좋아하고 아끼지만 그 비슷한 종류의 음식들을 늘 고를 수 있는 상황에서 지내고 있다. 하지만 이 저자는 미국에서 지내며 오직 어머니의 음식, 어머니와 함께 먹은 음식들만이 한 영역을 오롯이 지키고 있다. 익숙하지 않은 시선으로 보게되는 우리의 음식.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서 그런 음식을 본인의 시선으로 묘사하고 있다. 때로는 레시피까지 곁들여가며, 본인이 만드는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기도 한다.
엄마는 엄마대로 우리 상봉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내가 도착하기 이틀 전에 갈비를 재워놓고, 내가 좋아하는 반찬으로 냉장고를 채우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총각김치를 몇 주 전에 사놓고서 하루 전에 꺼내놓았다.
좀더 익혀서 내가 도착해서 먹을 때 적당히 알싸한 맛이 나도록.
참기름, 물엿, 탄산소다에 재운 부드러운 갈비가 팬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면서 내뿜는
달큼한 냄새가 부엌에 가득했다.
엄마는 신선한 적상추를 깨끗이 씻어 내가 앉아 있는 거실 유리 탁자 위에 올려놓았고,
연이어 다른 반찬들도 가져다 놓았다.
먹기 좋게 반으로 자른 계란장조림, 파와 참기름으로 무친 아삭한 콩나물,
국물이 넉넉한 된장찌개, 딱 알맞게 익은 총각김치였다.
p.142 / 463
3. 작가의 섬세한 언어, 상황 묘사가 좋다.
적절한 예시일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작가가 맞닥드린 고충에 대한 묘사 보다 못난 아버지에 대한 묘사가 계속 적확하다고 느껴졌다.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 마음이 한 문장문장에 아주 오래 베어있는 흔적처럼 낡은듯 선명하다. 그리고 얼마나 아버지를 하찮게 느끼는지.. 어머니에 비해서 얼마나 덜 소중한지가 아주 생생하다.
엄마의 병은 아빠가 빠져나갈 묘책을 찾아내거나 초과근무를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빠는 무기력한 기분에 시달리자 도망치기 시작했다.
p.174 / 463
4. 우리 가족을 연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떠올려볼 수 있다.
가족이라는 것은 때로는 실체가 없는 것 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평생 서로를 위하며 살아온 것 같은 가족도 사소한 다툼으로 다시는 보지 않는 사이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가족이다. 서로가 공유하고 있는 유대, 공통 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작가는 그걸 음식을 만드는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집도 음식일거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우리집은 산책인거 같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물론 엄마와 나의 유대가 가지고 있는 특별함일 수도 있겠지만.. 모두가 가족들을 서로 연결해주고 있는 기반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다.
이게 나한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아주머니에게 설명할지 말지 잠깐 망설였다.
역할 바꾸기를 완벽하게 해내려면 엄마가 드실 음식을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나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싶다고. 음식은 우리끼리 나누는 무언의 언어이며, 우리가 서로에게 돌아오는 일, 우리의 유대, 우리의 공통 기반을 상징하게 됐다고.
p.193 / 463
5.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다룬다
누구도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상상이나 준비를 미리 해야할까 싶은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100년 내로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읽고도, 수 많은 죽음의 준비에 대해서 읽고도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다고 느껴지는 건 그 책의 작가가 그래도 의료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가수를 꿈꾸고 현실을 살아가는 20대의 입장에서 겪은 일이다. 순간 순간이 너무 생경하지만 생생해서 마음에 시리듯 와닿는다.
은미 이모의 죽음에서 엄마가 가장 크게 배운 점은
항암치료를 스물네 차례나 받아도 죽는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엄마가 굳이 겪어내고 싶지 않은 시련이었다.
처음에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엄마는 항암치료를 두 번만 받겠다고 결심했다.
그래도 진전이 없으면 더는 받지 않겠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만일 아빠와 내가 없었다면 그것마저도 시도했을지 의문이다.
p.223 / 463
항암치료는 이미 엄마에게 남은 존엄을 마지막 조각까지 앗아가버렸고,
만에 하나 조금이라도 더 앗아갈 존엄이 남았다면 그것마저 기어이 찾아내고야 말 것 같았다.
엄마는 암 진단을 받고 나서 많은 결정을 우리에게 맡겨왔다.
우리가 자신의 변호인이 되도록, 자신을 대신해 간호사와 의사에게 간청하고
투약에 관해서 질문하도록.
p.228 / 463
6. 그럼에도 다시 힘을내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게된다.
역시나 작가는 결국 음식으로부터 치유 받는다. 작가는 어머니를 위해 요리하고 싶었던 잣죽이나 다른 음식들을 유튜브 ‘망치여사’로부터 하나하나 배운다. 그리고 김치도 직접 담궈서 먹게 되는데, 김치를 만들 때 마다 다시 치유를 받는다. 어머니와의 유대의 바탕이 음식이었기 때문에, 음식을 만듦으로써 치유를 얻는다.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는 말이 이 책에서도 나온다. 하지만 저자가 보여주는 맥락에서는 꽤나 다르게 느껴진다. 아시아계 혼혈 미국인으로써 살아온 삶에서의 자기 정체성의 혼돈이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음식과 함께 선명해지는 순간이다.
그때부터 한 달에 한 번씩 김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나의 새로운 치유법이었다.
오래된 김치는 찌개나 전이나 볶음밥에 넣어 먹고, 새로 담근 김치는 반찬으로 먹었다.
내가 먹을 양보다 더 많이 김치를 만들었을 땐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부엌에 식료품 유리병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병에 종류별로 담긴 김치는 익은 정도가 제각각 달랐다.
조리대 위에선 담근 지 4일 된 총각김치가 새콤하게 익어갔고,
냉장고에선 갓 담근 깍두기가 수분을 내보내고 있었다.
도마 위에는 커다란 배추 한 포기가 반으로 쩍 갈라진 채 소금물에 절여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멸치액젓, 마늘, 생강, 고춧가루의 풍미 속에 익어가는 향긋한 채소 향이
그린포인트의 작은 부엌에 물씬 풍겼다.
나는 엄마가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는
절대 사랑에 빠지지 말라고 주야장천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너한테서 항상 김치 냄새가 날 거야.
그 냄새가 네 땀구멍으로 배어나올 테니까.
엄마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말했다.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
p.407 / 463
7. 모두에게 맞는 치유법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 책에서 치유를 위한 여러가지 시도를 하고, 실패를 하기도 한다. 특히나 아버지와 함께 떠났던 여행은 최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처입은 두 사람은 서로를 더 상처주기에 이르기도 한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 의외로 어머니의 물건을 정리하며 치유를 받는 장면도 나온다. 당연히 모두에게 통용되는 치유법이란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지만, 이 책을 통해서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나는 홀린 듯이 빠른 속도로 물건들을 착착 치워 없앴다.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들을 분류하는 일은 고된 노역처럼
느껴졌지만 다 끝내고 나니 기나긴 고생 끝에 마침내 어떤 출구에 도달한 듯한, 긴 문장에 마침표를 찍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모든 물건이 부모 잃은 아이처럼, 물체, 짐짝처럼 보였다.
한때는 존재이유가 있었던 것들이 거추장스러운 무언가로 변해 있었다.
특별한 식사를 위해 고이 모셔둔 볼들은 이제 그냥 정리해야 할 그릇이,
내 갈 길을 가로막는 방해물이 되었다.
어렸을 때 마법의 단지인 척하면서 갖고 놀던,
내가 상상한 이야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초항아리는 이제 또하나의 버릴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p.356 / 463
그리고 작가도 이러한 과정을 거친 끝에 음식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이 내가 원한 전부였다.
몇 날 며칠을 화려하고 값비싼 고기 요리와 갑각류 요리
그리고 버터와 치즈와 크림 배합을 달리한 갖가지 감자 요리를 만든 끝에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진짜로 원한 요리는 바로 이것이란 걸.
이 담백한 죽은 난생처음으로 내게 깊은 만족감을 준 요리였다.
p.362 / 463
8. 익숙한 한국의 공간이 나온다
작가는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남편과 함께 서울로 신혼여행을 온다. 와서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 이모와 함께 며칠을 지내게 되는데, 이 때 홍대에서 시간을 보내는 장면도 나오고 이모네 가족고 함께 압구정의 고기집을 가기도 한다. 너무나 멀게 느껴지던 이야기가 갑자기 훅 일상으로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 이모와 소통하려는 작가의 모습에서 다시금 깊은 유대감이라는 것이 언어가 아닌 것으로부터 다가오기도 한다는게 느껴진다. (마냥 성공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모와 같이 음식 먹는 일이 나에게 얼마나 뜻깊은지를 이모에게 설명하려 애썼다.
음식을 통해 엄마에 대한 기억들을 되살리려고 애써왔다는 것도.
계씨 아주머니 때문에 내가 진짜 한국인이 아닌 것처럼 느끼던 순간도.
내가 된장찌개와 잣죽을 직접 만들었던 것은, 엄마를 돌보는 데 실패한 기분을 심리적으로 만회해보려는
노력이자 한때 내 안에 깊숙이 새겨져 있다고 느낀 문화가
이제 위협받는 기분이 들어 그것을 보존하려는 노력이었다는 것도.
하지만 적절한 단어들을 찾아낼 수 없었다.
번역 앱에 기대기에는 문장이 너무 길고 복잡했다.
그래서 반쯤 포기하고 그냥 이모의 손만 그러잡았다.
우리 두 사람은 얼음처럼 찬 새콤한 소고기 육수에 담긴 국수만 계속 후루룩거리며 먹었다.
p.386 /463
9. 엄마는 나의 대리인이자 기록 보관소
어느 순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가족들을 마주하게 될 때가 있다. 그래서 엄마가, 가족이 내게 얼마나 중요하고 큰 존재인지 잊고 오직 내가 온전히 두발로 서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작가는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다시금 본인의 세상이 어떻게 이뤄져있는지 느끼게 된다. 단순히 앨범이나 일기가 아닌, 가족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나의 일부인 것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엄마는 나의 대리인이자 기록 보관소였다.
엄마는 내 존재와 성장 과정의 증거를 보존하려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내 모습을 순간순간 포착하고, 내 기록과 소유물을 하나하나 다 보관해두면서.
엄마는 나의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태어난 때, 결실을 맺지 못한 열망, 처음으로 읽은 책.
나의 모든 개성이 생겨난 과정, 온갖 불안과 작은 승리. 엄마는 비할 데 없는 관심으로
지칠 줄 모르고 헌신하면서 나를 지켜보았다.
p.419 / 463
반응형
'보고 듣고 느낀것들 > 독후감&서평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문/교양] 위대한 망가 : 각잡고 추천하는 32가지 만화 (0) | 2023.01.31 |
---|---|
[자기개발] 타이탄의 도구들 : 올해는 나를 바꾸고 싶다면 (0) | 2023.01.30 |
[에세이] 마이너 필링스 : '소수자'에 대해서 '근처에서 말하기' (0) | 2023.01.18 |
[인문]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 이동진의 독서법 들여다보기 (0) | 2023.01.13 |
[인문] 독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삶에 지적 전투력이 필요할 때 (0) | 2023.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