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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숨 : 부담없이 SF 소설을 시작할 수 있는 책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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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숨 : 부담없이 SF 소설을 시작할 수 있는 책

혜등 2023. 7. 2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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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문학 중에 추리 소설을 많이 읽은 편이다. 그래서 나만의 추리소설관도 조금 있고, 좋아하는 추리소설 작가도 있다. 하지만 SF소설은 아직 손이 잘 가지 않는 편이다. 우리나라 김초엽 작가의 소설이 많이 유행하고 있을 때 (물론 지금도 인기가 좋지만) 읽어보려 시도했지만 초반 몇장을 넘기지 못하고 다 읽지 못했다. 사실 그 소설의 문제라기 보다는 책이 한참 안읽히던 시기라 그랬던거 같다. 그러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SF 소설 작가의 책을 읽으면 좀 더 이 장르에 대한 물꼬를 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골랐다. 그리고 올해 초, 한창 책이 잘 읽히던 시기에 읽기 시작한 이 책은 순식간에 각자의 결말에 다다르며 다 읽을 수 있었다.

테드 창의 소설 ‘숨’은 여러가지 단편소설의 모음집이다. 그리고 그 분량이 각자 다 달라서 어떤 부분은 몇장 안되어 결론에 도달하지만 특정 부분은 아주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하기도 했다. 하지만 SF 소설의 특성을 여기서 느낄 수 있었다. 작가가 상상하는 세계관은 결말에 도달해야 완성된다는 것. 그 이야기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결말이 소설의 세계관에 대한 마침표가 된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9개의 단편이 포함되어 있는데, 가장 짧은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의 분량과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의 분량은 거의 20배 가량 차이가 난다. 하지만 여기서 느껴지는 SF 소설의 매력은, 테드 창 작가의 매력은 비슷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세상의 상상력과 비슷하다고 해야할까. 탄탄한 배경 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라 이 소설에서 제시하고 있는 미래의 모습을 그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쉬웠다. 하나의 차이라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시점은 주로 과거의 이야기라고 한다면 테드 창의 소설은 주로 미래를 향해 있으며, 미야자키 하야오의 시선이 ’자연‘에 머무른다면 테드 창의 시선이 ’기술‘에 머물러 있다는 차이가 있을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여러 파트의 단편중에 가장 좋았던 것은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이었다. 내가 평소에 가끔 떠올리던 상념이 구체적인 소설이 된다면 이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 지금 모든 것들이 기록되고 모든 것들에 접근 가능한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이 더욱 극적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엔 강렬한 메시지가 있었다. 우리가 실체적인 ‘진실’이라고 하는 것들에 대해 작가는 ‘사실적’ 진실과 ‘감정적’ 진실을 나누어 그것을 하나의 이야기로 녹여서 보여주고 있다.

내 어린 시절 전체를 연속적으로 찍은 동영상에는 사실들은 가득하겠지만, 감정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카메라는 사건의 감정적 차원은 포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p.579
사람은 수많은 이야기로 이루어진 존재다.
기억이란 우리가 살아온 모든 순간들을 공평하게 축적해놓은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애써 선별한 순간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서사이다.
설령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건들을 경험하더라도우리가 똑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특정 순간들을 선별하는 기준은 각자 다르며, 그것은 우리의 인격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p.581


위와 같은 글들을 읽을 때마다 SF적 상상력이 지금 현실의 나의 생각과 닿을 때 아주 작은 쾌감들이 연속해서 느껴지곤 했는데, 이 파트에 그런 밑줄이 가장 많았다. 그리고 알게되었다. 이런 것이 SF소설을 읽는 재미라는 것을. 이 소설을 이후로 SF소설에 대한 마음의 문이 열린 기분이 들었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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