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디자이너의 독학
[수필] 교육의 발견 : 오 나의 미국에서 발견한 작은 경상도! 본문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다 읽고 기록하던 날이 생각난다. 너무도 놀라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소설이라기엔 실화를 옮겨 놓은 이야기였다. 실제 인물이 나온다. 역사도 나온다. 하지만 상상할 수 없던 현실 앞에서 놀라움을 감추기 위해 소설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배움의 발견’을 다 읽었을 때에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소설이라고 착각할만한 놀라운 이야기. 하지만 결정적인 부분이 달랐다. 이 책은 내가 겪은 일들과 비슷한 궤를 가지고 있었다. 이 책에 나오는 일리노이 주의 벅스피크는 아주 작은 경상도임과 동시에 아주 거대한 경상도같았다.
가부장제라고 말하기엔 사실 정신 질환에 가까운 그 가장의 모습. 그 가장이 선택하는 말도 안되는 선택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가족들. 그 가족들로부터 벗어나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주인공. 그 주인공이 선택하는 공부의 길이 어떻게 가족들과의 관계를 규정하느냐가 이 책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나도 주인공 만큼 멀고 험난한 여행을 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새 뒤돌아 봤을 때 가족들은 그대로인데 내가 얼마나 멀리 와있는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내가 갇혀 있었던 경상도가 나에게 자연스럽게 쥐어주던 선택들이 얼마나 이상한 것인지 알 수 있는 곳에 나도 도착해 있었다.
이 책을 올해 읽은 여러 책 중에 가장 읽기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 중에 하나는 정말 내가 하고 있는 지금의 선택들과 고민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거쳐 도착한 곳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느샌가 나의 의지로 모든걸 선택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지만 단순한 나의 의지가 아니라 얼마나 가족들의 흐름을 거슬러서 여기에 도착했는지가 다시 보였다. 그렇기에 벅스피크는 나의 작은 경상도이자 거대한 경상도인 것이다.
이 책은 놀랍게도 어느 나이대에 읽어도 너무나도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10대에는 자신의 성장 과정에서 드는 고민에, 20대에는 자신의 새로운 길 앞에서의 치열함에, 30대에는 가족들에 대한 회상에, 40대에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길에 대한 회한에, 50대에는 새롭게 구성되어버린 나의 일상에, 60대 이상에겐 자신이 구성하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기에 너무 적합한 책인 것이다.
정말 추천한다. 재밌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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