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디자이너의 독학
[동화/그림책] 긴긴밤 : 동화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 본문
올해 초, 2023년 3월 '세로'라는 이름을 가진 얼룩말이 동물원을 탈출했다. 탈출한 얼룩말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시선으로 얼룩말의 이야기를 재단했다. 여자친구 문제로 동물원을 탈출했다느니..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가십처럼 소비됐다. 하지만 그 때에도 생각했다. 얼룩말이 동물원 안에 갇혀 있는데에는 이유가 필요하지만 동물원을 탈출하는데에 왜 이유가 붙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이 가둬둔 얼룩말이 세상으로 나왔는데 말이다.
그때도 긴긴밤을 알고 있는 지인들은 이 이야기를 들으며 이 책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나 나도 이 책, 긴긴밤을 읽게되었다. 나도 사건이 일어났던 당시에 생각이 떠오르며 늘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인간적인 이유로, 얇은 동화책은 언제든 금방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번에 읽게되었다.
공교롭게도 이 책은 아이스링크장에서 읽었는데 그 와중에 바다를 찾아 떠나는 펭귄들의 이야기가 더 절절하게 다가왔다. 인간이 미안해. 너희들이 바다를 찾아 갈 이유가 없었는데. 바다에서 왜 동물원으로 데려와서 바다를 찾게 만들었을까. 그런 생각.
이 책은 만남과 이별이 계속 반복되는 이 책은 코끼리들 품에서 자란 코뿔소 '노든'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코끼리들과 함께 자연 속에서 행복하게 살았던 나날들 속에서 어느 순간 떠나야겠다는 것을 결심하게 되고, 행복한 날들을 아릿한 기억으로 남긴 채 노든은 먼길을 떠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소중한 인연을 만나지만, 대부분 원치않는 방식으로 이별하게 된다. 특히 인간의 무분별한 포획을 피해 겨우 살아남은 노든은 모든 흰바위코뿔소가 죽고 완전한 혼자가 되어 긴긴밤을 보내게 된다. 그러다 동물원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만난 펭귄 친구들의 알, 어린 펭귄을 바다에 데려다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그리고 있는 동화책이다.
강인하기만 할 것 같은 코뿔소는 긴긴밤 내내 아주 어리고 취약한 존재로 보인다. 하지만 긴긴밤이 지나면 어느새 다시 어딘가로 향해 걷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확인할 때마다 무언가 울컥하게 되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작가의 섬세한 일러스트 때문인 것 같기도 하지만 담담한 동물들의 목소리에 더 많이 울컥했던 것 같다.
이 책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많은 수가 자연스럽지 않은 방법으로 수명이 다한다. 그 어떤 동물도 원하는 결말을 얻지 못한다. 하지만 어린 펭귄 만큼은 바다에 도착해 이 이야기를 남기게 된다. 긴긴밤을 지나서. 얼룩말 세로는 아직도 동물원 안에서 긴긴밤을 보내고 있다는게 떠오를 때마다 다시 마음이 아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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