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디자이너의 독학
[야구수필] 박세웅과 김진욱, 맥시멈과 미니멈_230404, 3/144 본문
'긁히는 날'이라는 표현이 있다.
특히 예전 신정락 선수의 투구를 두고 그런 표현을 많이 썼던 것 같은데
긁히는 날에는 정말 누구도 손댈 수 없는 각도로 공이 꺾여서 최고 투수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뜻이다.
쉽게말하면 컨디션이 좋아서 '마구'같은 공을 던지는 날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야구라는 것이 참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긁히는 날처럼 공을 던지기 위해서 그날과 똑같은 환경, 똑같은 자세, 똑같은 힘으로 공을 던져도
똑같은 결과가 나오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최고의 공은 '긁히는 날'에 나온다. 하지만 매일매일 긁히지 않는다면 투수는 어떻게 해야할까?
오늘 롯데자이언츠의 투수로 선발투수로 등판한 박세웅 선수와 김진욱 선수를 보며
긁히지 않는 날의 투수의 모습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박세웅 선수는 오늘 좋지 않은 성적표를 받았다.
많은 삼진을 잡아냈지만 결과적으로 볼이 너무 많았고, 볼넷과 안타로 많은 출루를 허용했다.
하지만 선발투수로써 '최소한'의 역할을 해줬다고 생각한다.
많은 이닝과 압도적인 투구를 하면 좋았겠지만, 박세웅 선수는 본인의 역할 안에서 해줘야하는
최소한의 플레이를 공 100개를 소화해내며 해냈다.
WBC 대표팀 차출이라는 핑계나, 비오는 날에 투구하는 상황, 포수의 포일 등을 핑계로 댈 수 있겠으나
절대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SSG선수들이 무시할만한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경기를 본 모든 사람들에게 박세웅 선수는 '최소한' 이정도는 할 수 있는 투수라는걸 보여줬다.
김진욱 선수는 SSG전에 좋은 기억이 있다.
롯데의 위기 상황에 등판해서 추신수 선수와 최정 선수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최고의 좌완투수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줬고, NC 박민우 선수가 하차한 자리를 대신하여
도쿄 올림픽에도 다녀오게 된다. 이후로 계속 부침을 겪게 되지만
2022년 NC전에 선발투수로 등판하여 모두가 꿈꾸는 김진욱 선수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모두가 그렇게 김진욱 선수의 반짝이는 최고의 순간을 기억하고, 기대하는 상황.
오늘 김진욱 선수의 투구를 보며 다시한번 야구는 '맥시멈'만큼이나 '미니멈'이 중요한 스포츠라는걸 깨닫게 된다.
결과만 놓고보면 김진욱 선수는 오늘도 제구가 안됐다. 볼넷은 연발하며 희생번트를 제외한 세타자 모두 볼넷.
고교 최고의 투수라는 평가를 받았던 김진욱 선수는 오늘 같은 본인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장기적으로 김진욱 선수의 포텐을 끌어내고 다시한번 최고의 순간들을 만들어내야하는 것이
김진욱 선수와 롯데자이언츠의 숙제다.
투수란 아무리 최악으로 경기가 안풀리는 날이더라도, '최소한'의 결과를 내야하는 자리인 것이다.
타자도 마찬가지. 아무리 안풀리는 날에도 '최소한'의 진루타는 쳐줄 수 있어야 하는 자리인 것이다.
아무도 김진욱 선수의 노력을 의심하지 않는다. 윤성빈 선수조차 기다리고, 계속 기회를 주고있는 롯데다.
이 모든 순간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서, 한가지의 결론에 도달하기 바란다.
'비가와서', '컨디션이 아직', '심판 스트라이크 존이', '프레이밍이', '아직 호흡이 안맞아서'라는 이유들은
다 저 멀리로 날려버리고, 이 모든 순간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김진욱 선수가 버텨야 할 곳은 마운드 뿐이다.
팬들의 한탄도, 기자들의 의심도, 코치들의 지적도 이겨내야한다면 이겨낼 곳은 마운드 뿐이다.
은퇴가 가까워진 투수들이 비슷하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한번이라도 좋으니 '내 공'을 한번 던지고 미련없이 은퇴하고 싶다는 말.
하지만 그런 순간을 다시 되찾고 은퇴하는 선수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안다.
최고의 순간은 최고의 공을 던지는 날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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