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디자이너의 독학
[논픽션/회고록] 질볼트테일러 :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본문
뇌과학 분야에 대한 오랜 연구가 계속 되고 있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얕은 지식 외에는 아직 우리는 뇌에 대해 무지하다. 좌뇌와 우뇌의 차이에 대해서도 그냥 양쪽이 다른 부분을 담당하고 있겠거니 하는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고, 인간은 평생 뇌의 30%정도만 사용한다는 낭설도 오랜 시간을 거쳐 상식처럼 퍼져있다.
이 책은 뇌에 대해서 더 알고싶은 마음에 읽기 시작했다기 보단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의 입장이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더 그 입장을 자세히 적어두어 읽는 내내 흥미롭고 놀라운 광경을 체험하듯이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작가가 결국엔 회복한다는 결말을 알고있어서 마음편히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뇌과학자 질 볼트 테일러가 뇌출혈 과정을 겪으며 느끼고 배운점들에 대해 기록한 책이다. 1부에서는 뇌졸중이 찾아오기 직전까지의 저자의 삶에 대해 짧게 보여주고 뇌졸중이 찾아온 아침부터 일상으로 복귀하는 순간까지가 기록되어 있다.
처음 뇌졸중을 겪는 순간에 작가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뇌를 오랜기간 연구한 사람에게 찾아온 ‘뇌질환’을 받아들이는 사고의 흐름이 놀라웠다. 뇌가 무너지는 과정을 몸소 느껴볼 수 있다는 생각에 학자로서 반가워하는 모습이라던지, 이 과정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진행과정을 꼼꼼히 관찰하는 모습이 대단했다. 병원으로 옮겨진 저자는 대수술을 받고 8년간 뇌의 기능을 되찾는 회복기를 거친다.
이 책을 다 읽은지 시간이 좀 지났지만 뇌졸중이 찾아온 아침, 응급 전화를 걸기까지의 순간이 너무 아찔하고 극적으로 느껴졌다. 뇌가 무너진 순간엔 사람은 그 무엇하나 쉽지 않다는걸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전화번호를 알아도 전화를 거는 방법을 모를 수 있다. 아니 전화라는 개념 자체를 떠올리는게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처음엔 뇌에 대한 학문적 관심으로 이 책을 접하는 사람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모두가 이 부분만큼이라도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장면 중 하나가 이 순간의 묘사였다. 단순히 대처법을 매뉴얼처럼 알리는 것 이상으로 이 순간의 서사가 가질 수 있는 힘을 작가는 잘 전달하고 있다.
2부에선 뇌졸중이 안겨준 통찰을 가지고 ‘나’로 살아가는 작가의 모습, 수 많은 선택들을 담고 있다. 전반적으로 좌뇌와 우뇌의 차이를 직관적으로 체험한 작가의 말들은 학문적인 차원의 통찰과 ‘명상가’같은 득도에 다다른 사람의 언어를 계속 오가며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 인사이트를 준다. 뇌졸중으로 한쪽 뇌의 기능이 마비되었을 때의 얻을 수 있는 ‘평온함’이라는 역설도 놀랍지만 ‘회복’이라는 개념이 ‘선택’의 범위에 있을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내 영혼이 우주와 하나이며 주위의 모든 것과 함께 흘러가는 것이 황홀했다.
… 회복이라는 것이 항상 스트레스를 느끼는 삶을 의미한다면 회복하고 싶지 않았다.’
이 문장만 보면 일견 직관적으로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반대로 '환자'가 느끼는 감정이라면 또 생경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는 지금 건강한 모습이 온전한 우리라고 생각하지만 결핍이 주는 온전함이 가능하다는 걸 2부를 통해 알 수 있다.
3부는 좀 더 실질적인 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며 책은 모든 이야기를 마친다.
독서를 통해 세상을 달리보는게 목적이라면 이 책이 큰 도움이 될것이다. 살아가는 내내 우리가 함께할 존재인 뇌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하고, 뇌를 바라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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