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김규림 : 아무튼, 문구
‘아무튼 시리즈’는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3개의 출판사에서 기획한 책으로, 다양한 주제에 대해 그 분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쓴 책이다. 나는 아무튼 양말을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 이 시리즈는 읽을 때마다 나도 양말이 좋아지는 것 같은 기분과 함께 그럼 나는 어떤 것들에 대해서 글을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아무튼, 문구’는 귀여운 삽화와 함께 편한 주제가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구를 좋아하기 시작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작가의 일상 생활속에서 느꼈던 문구인으로서의 자각이 있었던 순간순간들이 기록되어 있다.
작가는 본인의 여행을 돌아보기도 하고 본인의 책상을 돌아보기도 하며, 본인의 소비 패턴이나 취향에 대해서도 ‘문구인’으로서 되돌아본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요소들이 문구인의 눈엔 어떻게 보였는지, 종이나 펜, 노트의 필요를 1차원적 필요를 넘어서서 바라보았을 때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나도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문구사집 아들로 지낸 20년의 삶이 생각났다. 그리고 이 책의 첫 페이지를 읽으며 ‘나도 문구인이구나’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다른것들은 펑펑쓴적이 없지만 문구 만큼은 원하는 만큼 원없이 쓰며 자랐다. 공책도, 연필도, 문제집(?)도 다 지근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손쉽게 사용했었다. 그리고 건축학과로 진학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전공에 비해 조금 더 다양한 문구를 쓰기도 했었는데, 생각해보면 1학년 1학기 설계 교수님의 첫 마디가 나를 좀 뒤흔들어 놓았던 것 같다.
건축학과 학생이면 가장 좋은 문구를 사용해야한다
늘 내가 사용하는 모든것들을 1차원적인 필요에 의해서만 모든걸 선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말이었다. 꼭 저 말이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는 없지만, 종종 문구 앞에 설때마다 생각나곤 했다. 왜 좋은 문구를 써야하지?에 대해 답해보려고도 해봤는데, 무언가를 선택할 때의 기준을 ‘금액’에 두는게 아니라 ‘사용성’ ‘취향’등 다양한 가치로 바라볼 수 있는 생활속 작은 기회이기 때문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내용 중에 가장 공감이 갔던 부분은 ‘꼭 필요해야만 사나요?’라는 챕터였다. 작가의 말처럼 나도 ‘쓸데없는 것들의 힘’을 믿는다.
생필품들은 삶을 이어나가게 해주지만 삶을 풍성하게 하는 것은 쓸모없는 물건들이다.
삶을 풍성하게 하는것이 단일한 요소는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사회적 성공도, 경제적인 자유도 모든 것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쓸데없는 것들이 주는 낭만을 믿는다. 낭만은 왜인지 모든것을 보장해준다고 생각해도 괜찮을 것만 같다. 그리고 그 낭만으로 조금 더 풍성해진 삶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