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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페스트 : 73년전에 먼저 온 코로나 19와 완독지수로 책 고르기

혜등 2023. 9. 13.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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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책을 왜 읽을까.

2021년 쯤, 내가 너무도 책을 안 읽는다는걸 깨우친 어느 날, 내가 그동안 책을 읽었던 이유에 대해서 한번 정리해봤다. 더불어 그동안 내가 왜 책을 읽었었는지에 대해서도 한번 떠올려보면서. 그렇게 한 5가지 이유가 나왔던 것 같은데, 요즘 그래도 책을 다시 읽게 된 상황에서 그 이유에 대해선 다시 좀 희미해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책은 왜 읽을까.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 고민하다보니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예전엔 책을 한번 사면 그 구매했던 나의 선택에대해서 책임을 지기 위해서 어떻게든 책을 다 읽어야 하는 코스에 오르기도 했는데, 설사 도서관에서 무료로 빌린 책일지라도 나의 7권 대여 가능한 범위 안에 골랐던 나의 선택, 그리고 도서관까지 발걸음을 옮겼던 그 선택들에 대해서 책임을 지기 위해서라도 책을 읽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전자책의 시대, 밀리의 서재 안에 수 많은 책들이 산재해 있는 가운데에 책 고르기는, 책을 완독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그래서 어느샌가 밀리에서도 책에 대해 소개할 때 '완독률'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책을 홍보하기도 한다.

소위 '밀리 완독 지수'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위에 적혀있는 대로 완독할 확률, 완독 예상 시간을 적어주는 것이다. 이는 어떤 밀리 리포트에는 작가별로 '완독할 확률이 높은 작가'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거기다 '홀릭' '밀리 픽' '히든' '매니아'라고 4분면에 나눠서 이걸 그래프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4가지가 어떻게 다른지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건 이 새로운 지수가 나에게 책을 고르는 하나의 지표가 되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참고하려고 해도 저 네이밍에서 오는 이미지가 잘 상상이 안되기 때문에.

그러다 코로나 19가 잦아들어 이제 코로나에 걸려도 휴가가 안나올 때 즈음, 그동안 미뤄오던 '페스트'를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아니면 다시 이 책을 읽기는 기회가 잘 오지 않을 것 같기 때문에, 그리고 다음 유행병이 왔을 때 이 책을 허겁지겁 읽는 내 모습이 너무나 못나보일 것 같다는 이유 두가지 때문에 읽게되었다. 

그렇게 읽게 된 페스트. 사실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었고, 너무도 차분한 놀라움으로 가득한 책이었다. 이 책의 주된 감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이 이야기를 73년전에 했었다고?' '이 상황이 73년 전에 이미 있었다고?'라는 생각이었다. 너무도 극한의 상상력으로 적어냈을 법한 소설 속의 상황이 2020년대에 일어나고 있구나..하는 생각. 내가 만약 코로나가 오기 전에 이 책을 읽었으면 지금 시대를 읽어내는 눈이 달라졌겠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철학가이자 작가이자 기자이기도했던 알베르 카뮈. 이 책에서 가장 지금 이 시기를 관통하는 문장은 소설 초입에 등장한다.

어떤 도시 하나를 아는 데 손쉬운 바업이란 사람들이 그곳에서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죽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작은 우리 도시에서는 기후의 영향인지도 모르지만 이 모든 일들이 한꺼번에, 그것도 우열을 가릴 길 없는 열광적이고도 공허한 분위기 속에서 벌어진다.

지금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일했는지, 어떻게 사랑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를 바라보면 지금 이 시대의 도시가 어떤지 명확히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쓰러지고 혼미 상태에 빠져버린것처럼 모든것이 한순간에 무너진 코로나 19. 그 시대를 관통하는 문장은 초중반쯤에 한번 더 나온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믿고 있었지만, 재앙이 벌어진 이상 그 누구도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 지난 4년간의 기록들 속에서 우리는 자유가 얼마나 쉽게 잃을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이 책을 부디 2020년 전에 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지금에라도 읽은 것에 위안을 가지며, 다음 다가올 위기에 좀 더 차분한 놀라움을 체화했을 나를 생각하면서 이 책을 다시 한번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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